아이의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 남편의 월차를 사용하여 여행 계획을 짜기로 했다.
예민하고 겁이 많은 아이와 한 번도 외박을 해본 적이 없었고,
차를 오래 타고 가는 것을 불편해 해서 1시간 이상의 거리를 멀리 나가 본 적도 없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한번 타보고는 너무 무섭다며 울어서 대중교통은 아직 시도도 못해봤다.
잠깐씩 키즈카페도 다녀보고, 어린이집에서도 작년 하반기에 외부활동을 많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성큼 자랐나 보다.
이제는 아이가 차를 오래 타도 잘 있고,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때 적응하는 시간이 짧아져서 이제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여행을 좀 다녀볼까
여행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니 어쩌면 불편함 때문에 여행을 잘 다니지 않은 것도 있었다.
후각이 예민해서 다른 사람의 체취를 맡는 것도 싫고, 락스물에 살균된 침구 냄새도 불편했다. 모텔 같은 곳은 방안 가구에 배어있는 담배냄새도 힘들었다.
락스 냄새가 남아있는 침구류와 수건 등은 내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어서 핸드크림을 덕지덕지 발라도 부족했다.
어쨌든 여러 이유로 우리 부부는 당일치기를 주로 다녔고, 숙박을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임신 중기 태교여행을 기대하다가 코로나로 외출을 못하게 되자 아얘 집순이모드로 바뀌어버렸는데,
아이도 집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나가기 싫어해서 다행이었지만,
이제 아이가 30개월이 지나가면서 외부활동을 통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침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의 문제도 생겼고, 웬만한 불편함은 아이를 돌보다 보면 잊어버리기 일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캠핑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지만 시도하지 못했던 것은 나 때문이다. 모기에 잘 물리는 나는 여름 숲에 잘 가지 않는다. 여름밤에는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가 모기 물릴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물리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한 곳
아직 멀리 가는 것에 부담이 있는 우리는 30개월 아이가 체험할 만한 여행지가 있는 서울 근교를 찾다가 가평을 선택했고,
캠핑 로망이 있던 남편은 글램핑이 가능한 달빛정원글램핑&카라반을 제안했다. 후기도 좋고, 실내에 개별화장실이 있는 점이 가장 좋아 보였다고 했다.
모든 예약과 일정은 남편에게 맡겼다.
여행 계획을 짜려고 스케줄러를 여는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감도 없었다.
최근 나의 MBTI는 INFP였기 때문에....
그저 나는 일정에 가평양떼목장 방문을 추가해 달라고 했다.
준비물
캠핑은 물론 글램핑도 처음이라 무엇이 필요한지 여러 블로그를 뒤졌다.
기본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어른 짐은 필요한 것이 많지 않았다.
- 수건, 칫솔 꼭 챙기세요! https://blog.naver.com/minijiny0728_/222911322667
- 산 속이라 해가 저물면 기온이 많이 떨어져 추우니 6월이라도 긴팔 외투는 필수로 가져오시길 바란다. 먹을 것과 생수는 안 적어도 되겠지... https://blog.naver.com/hein52/222773494013
- 장작에 익힐 군고구마, 꼬치 어묵 밀키트 https://blog.naver.com/moomoo818/222930158594
- 삼각대 또는 셀카봉 https://blog.naver.com/lovetogapyjs/222505158281
- 개인 세면도구, 잠옷 https://blog.naver.com/you960415/222914616531
- 내가 적은 리스트: 캠핑용 꼬치, 햇반, 컵라면, 담요, 가벼운 외투, 두꺼운 외투, 핫팩, 충전기, 수면양말, 슬리퍼
- 아이 것: 수저세트, 빨대컵, 여벌옷, 기저귀, 비눗방울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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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정
계획은 오전에 마트에서 장보기(10시 오픈) -> 점심 먹고 출발 -> 이동시간= 아이 낮잠타임 -> 양떼목장 -> 3시 체크인이었는데,
아침을 늦게 먹었고 필요한 게 고기뿐이라 한살림에서 고기를 사버렸더니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가평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출발했다.
가다 보니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이는 차에서 배가 고파져 음료수와 과자로 배고픔을 달래게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가평 휴게소가 양떼목장이나 달빛정원보다 더 멀었기 때문이다. ㅋㅋ
초창기 전참시를 즐겨보던 우리는 이영자의 휴게소 맛집을 보며 꼭 가고 싶어 했는데, 멀리 다니지를 않으니 휴게소에 갈 일이 없었다.
이때가 기회 다며 남편은 가평휴게소를 제안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승낙했는데 거리가 이렇게, 아이의 신체리듬 스케줄이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가평휴게소에는 사람이 많았다. 역시 방학을 이용해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밥을 먹었다.
(사람이 많은 휴게소 푸드코트에서는 메뉴선택보다는 자리 차지가 우선이었다! 나중엔 자리가 없어서 다 먹어가는 테이블 옆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따뜻한 국물과 밥만 겨우 먹은 아이는 차에서 잠이 들었다. 양떼목장까지의 거리 30분 남짓.. 그래 오늘은 밤에 일찍 자자..
가평 양떼목장
양떼목장에 도착해서 주차장에서 잠깐 더 재우고 아이를 깨워서 양떼목장에 먹이 주기 체험을 했다.(미리 예약함)
우리 안에 들어가서 풀어져있는 양들에게 건초를 주는데, 양들은 이미 배가 불러서 맛있는 부분(꽃 부분)만 먹으려고 했다.
양은 눈이 잘 안 보이는데 자꾸 나를 올려다보길래 콧잔등을 쓰다듬었더니 반응이 괜찮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쓰다듬어보라고 했더니 눈높이가 맞는 아이가 만졌을 때는 공격하려는 듯(?) 아이에게 얼굴을 가져다 대길래 재빠르게 제지했다.
양 우리를 나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알파카가 있는데, 알파카들이 더 건초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양들이 있는 곳을 가기 전에 당나귀들도 있었지만, 당나귀를 지나 양을 지나야 건초를 받을 수 있었기에..... 당나귀들에게 다시 건초를 주러 가지는 못했다.
언덕 위쪽에 토끼 먹이 주기 체험이 가능한 축사건물이 있어 올라갔더니 토끼뿐 아니라 방목되지 않은 양들, 털 깎은 양들과 육아 중인 어미양들이 있었다. 건초를 남겨오길 잘했지.. 그곳에 있는 양들은 정말 허겁지겁 먹어주어서 먹이 주기 체험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기양들도 볼 수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카페는 머무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들르지 않았다. 카페타임이 필요하다면 예약할 때 음료값을 포함해서 예약할 수 있다.
달빛정원 글램핑
도착했을 때 체크인을 위해 관리동에 들렀는데, 체크인과 동시에 설명과 보증금 결제를 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
금방일 줄 알고 올라가는 길에 정차했다가 다시 주차자리에 옮겨야 했다.
남편이 설명을 듣는 동안 아이와 함께 구경했는데 직원분들의 태도가 매우 친절하게 느껴졌다.
사무적이지도 않고 언제든 편하게 도움을 요청해도 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C5동을 예약했다. 오르막길에서 바로 앞에 있었다.
텐트 안에 들어가 본 아이는 생각보다 낯설어하지 않고 좋아했다.
침대와 화장실이 실내에 있고, 주방과 식사하는 자리가 실외에 있는 구조이다.
2월 말 3월 초, 평년 기온에 비해 높은 편이었지만, 역시 산자락이라 공기가 차가웠다.
달빛정원에서 좋았던 점
- 깨끗함: 침대가 있는 곳에서 방향제인지 탈취제인지 냄새가 어지럽긴 했지만, 환기를 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머물다간 느낌도 없었고, 매일 살균세척한다는 것이 진짜로 느껴졌다. 화장실의 청결함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 친절함 : 곳곳에 안내사항이 자세히 적혀있었고, 불 피우는 법 까지 있어서 우리가 스스로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원래는 직원이 해주심)
- 침대 2개: 집에서도 남편과 따로 자는 나.. 아이와 자는 나.. 딱 맞는 침대개수와 사이즈가 나에게 너무 고마웠다.
- 개별 주차공간: 짐을 쌀 때 전혀 걱정이 없었던 게, 글램핑 텐트 바로 옆에 차를 댈 수 있으니 따로 여행가방이나 캐리어가 필요 없었다. 캠핑용 접이식 박스에 필요한 짐 넣고 그대로 옮겨서 박스는 실내 테이블로 쓰니 딱이었다.
- 불멍세트: (남편 픽) 모닥불 볼 일이 별로 없는데 좋았다고 한다. 나는 오로라가루가 영상으로 봐도 뭐가 특별하다는 건가 싶었는데 이건 실제로 봐야 한다. 사실 밤에 너무 추워 밖에 있을 수가 없어서 불멍은 못했다.
- 매점 위치: (남편 픽) 달빛정원 도착하기 직전에도 편의점이 있어서 봐두었는데, 관리동에 있는 매점에 웬만한 필요한 게 다 있어서 굳이 밖을 나갈 필요가 없었다. 직원분들이 없을 때엔 안내문에 필요한 거 고르고 이체하라고 되어있었는데, 사람들이 훔쳐갈까 봐 조마조마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신뢰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 의외의 즐거움: 빙어낚시- 커다란 풀에 빙어를 풀어놓고 잡는 것이었는데, 기대하지 않은 놀이거리였고 생각보다 빙어 잡기가 어려웠다. 잡은 것은 라면에 넣어 먹어도 되지만, 웬만하면 길냥이에게 양식으로 주길 바라시는 직원분. 길냥이- 달빛정원에서 키우시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냥 야생이라고 하시며 가까이 가거나 만지면 할퀼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다. 빙어낚시 때도 함께 있었지만, 해가 지고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하니 와서 고기를 얻어먹고 가기도 하고, 장작이 타고 있는 화로 밑에서 몸을 녹이기도 했다. 우리가 테이블을 텐트 밖에 두었더니 텐트 안쪽 테이블이 있던 곳에 들어가 온기를 느끼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갔을 때 부족했던 점.
- 실내 놀잇감: 밖에서는 비눗방울도 하고, 빙어낚시도 하고, 고양이 구경도 하고, 산 구경도 하고 좋았는데, 추워서 안에 들어가고 나니 TV만 있고 같이 놀거리가 없었다. 간식을 먹거나 TV를 보거나였다. 우리 집엔 TV가 없어서 아이는 어디서나 TV 같은 전광판이 보이면 넋을 놓고 본다. 밖이 추워 밖에 둘 수 없고, 엄마랑 아빠 모두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시간에 TV를 틀어주고 혼자 있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혼자 실내에서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좀 들고 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 패딩(로옹! 패딩): 두꺼운 외투를 가져가야지! 하고 생각은 했는데, 일기예보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서 짐을 줄이고자.... 잘못된 선택이었다.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실내에서 놀다가 옷을 다시 껴입고 밥을 먹으러 나와야 했다. 롱패딩이 있었으면 실내복에 롱패딩 딱 걸치면 좋았을 텐데... 덤으로 털크록스도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 화장실 슬리퍼, 스텝퍼 : 어른용 화장실 슬리퍼는 있었다. 아이 것을 생각 못했다. 바닥에 물기가 있으면 슬리퍼를 신어야 하는데 슬리퍼가 없어서 아이를 들고 변기에 앉혔다가, 세면대 손을 씻겼다가 하느라 허리가 아팠다. 다음에 여행 갈 때는 꼭 유아용 화장실 슬리퍼와 세면대에 손을 씻을 수 있게 휴대용 스텝퍼를 챙기리라!
다시 간다면?
날씨가 따뜻해지면 달빛정원은 꼭 다시 가보고 싶다. 글램핑 해봤으니까 카라반에서 묵어볼까? 여름에는 관리동 옆 빙어낚시 하던 곳에 어린이용 물놀이터를 설치해 주시는 것 같다. 덜 추울 때 뜨거운 불멍도 해보고, 물놀이도 즐기고, 야외에서 노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아.. 벌레가 극성이기 전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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