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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모저모

결혼 10주년을 맞이하며

by 엘리니별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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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5일, 2013년 3월 9일 두 번 결혼식을 올린 우리는 이제 10년 차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을 두번 올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고.

결혼 후 7년간 아이가 없었고, 19년도에 체외수정 시술(시험관)로 임신에 성공했고,

20년 7월에 아이를 낳아서 이제 30개월이 된 귀염둥이가 있다. 

 

매년 12월 중순에 결혼을 성사시켜주신 분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일단 중매해주신 큰형님과 목사님과 사모님, 친정엄마와 함께 매년 극적으로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그날을 기억하며 음식을 나누는 자리이다. 

올 해는 미국에서 잠깐 비자 때문에 들어온 목사님 아들과 주인공 자리를 독차지한 귀염둥이도 함께 했다. (작년에는 이 꼬맹이가 존재감이 없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사모님께서 결혼한지 10년이 되니 어떠냐는 질문을 하셨다. 난 또 별로 특별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그냥 매해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이제 10주년이라니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부부 관계에 대해

부부관계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감정이 격렬해진 부부싸움이다. 여러 책과 상담 결과에서 부부싸움은 건강한 것이고 현명하게 마무리를 하면 부부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아주 좋은 발판이 된다고 했다. 진짜 맞다. 형태가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싸웠을 때 해결해주는 것처럼, 각자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그런데 나의 특별한 문제가 있다.

울음.

나는 화가나면 울음이 터져 나와버린다. 눈물이 나고 울먹이다 보니 악쓰고 화를 내는 게 잘 안된다.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이익을 얻게 되면 화가 나지만 그 화를 표현해내며 따져 묻지를 못한다.(이제 그런 일을 당할 일이 거의 없지만)

그러나, 나의 이 약점이 부부관계에서는 좋은 점이 되었다.

울음이 터져나와버리니 감정이 격해지는 자리를 피하게 되고, 내가 화난 부분에 대해서 글로 쓰기로 했다. 남편은 내가 왜 우는지 모르고 황당하여있으나, 나는 설명을 할 방법이 카톡뿐이니 말이다. 장문의 카톡을 쓰다 보면 내가 화난 부분이 명확해지고, 대신 내가 잘못한 부분도 확인이 된다. 쓴 것을 읽어보면 논리를 확인하게 되고, 논리가 안 맞는 부분은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감정은 정리가 되고, 지금 나의 상태와 남편이 고쳐줬으면 하는 태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게 되었고,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은 그냥 내 감정이 그 순간 그랬던 것이니 남편이 어떻게 대해주면 좋을지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면 된다. 여자는 감정에 충실할 때가 너무 많아서 이성을 중시하는 남자는 이해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럼 그냥 내가 이런 감정일 때 (성질내지 않고) 이런 상태임을 알려줄 테니 이렇게 해달라고 명확하게 제시해준다. 예를 들어 나에게 정리할 시간을 달라거나, 맛있는 것을 사다 달라거나. 남편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감정 때문에 사이가 서먹해지는 것이 싫기 때문에, 아내가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리한 부탁이 아니면 해줄 것이다. 아니, 무리를 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런 문자적인 부부싸움을 신혼초반에 많이 한 것 같다. 기념일에 서운했던 것도, 명절에 시댁에서 서운했던 것도, 남편의 야근 때문에 서운했던 것도 이렇게 표현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내 상태를 확인하고 미리 통보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남편도 내가 화날 것 같은 상황이 생길 예정이면 괜찮겠냐고 미리 물어보고,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배려도 해주었다. 

사실 나도 감정에 크게 요동하는 편도 아니고, 남편은 감정이 요동하는 누나들과 지내서 여자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긴 하다. 

 

임신에 대해

남여가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난임의 기간을 거치면서 많이 찾아보니 엄청난 확률로 아이가 생기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어쩌다 한번 잠자리를 가져도 아이를 임신하는 부부가 있고, 건강하고 잠자리를 자주 해도 아이가 잘 안 생기는 부부가 있었다. 

처음에는 바로 임신이 될까 두려웠는데, 나중에는 피임을 안해도 되니 얼마나 편한가 하며 편안하게 생각했다. 

같은 시즌에 친한 친구들이 줄줄이 결혼을 했는데 바로 임신이 되어서 친구들의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가까이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대해줘야지, 저렇게 해줘야지 하는 바람을 갖고 그것을 남편과 많이 나누기도 했다. 

3년 차에 난임 검사를 한번 받았고 인공수정을 시도해봤지만 실패했다. 인공수정을 준비하며 정자의 건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님을 확인하고 시댁에 알렸다. 그러니 시댁에서는 아이에 대한 부담을 주지 못하셨다. 

5년 차에 자연임신이 되었는데, 아기집만 확인하고 심장박동을 확인하지 못했다. 유산이었다. 4명 중의 1명이 유산을 겪는다고 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었는데, 그리고 원하던 대로 자연임신이 되었는데 유산이라니ㅠ

너무 슬펐는데 의사선생님의 덤덤한 말이 위로가 되었다.

"이 아이는 원래 여기까지 였던 거예요."

건강하지 못한 유전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었던 거라 심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품은 아이가 장애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걱정이 있었는데, 차라리 유산된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렇게 흐지부지하며 지내고 있다가 6년 차에 비슷하게 결혼하고 난임이었던 친한 부부가 시험관(체외수정) 시술을 해서 임신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제안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엄청 고생했지만, 우리 부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7년 차에 아이를 키우며 다닐만한 직업을 찾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며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시험관 시술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다시 난임 병원을 찾았고,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호르몬 약을 먹고, 배에 직접 주사를 놓고 하는 것들은 임신을 했다는 기쁨에,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기쁨에 아무런 힘듦이 되지 않았다. 다 감사했다. 

 

다른 이야기는 나중을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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